마녀사냥 뜻과 유래, ‘유령을 봤다’는 말이 어떻게 재판의 증거가 됐을까?

빈 법정 의자에 여러 손가락 그림자가 향하는 마녀사냥 표지
한 사람에게 의심이 집중되는 상황을 옛 법정으로 표현한 상징 삽화.

인터넷에서 한 사람을 향한 비난이 쏟아질 때 “이건 마녀사냥이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단순히 의견이 많이 모였다는 뜻은 아닙니다. 혐의를 충분히 확인하기 전에 누군가를 잘못한 사람으로 몰고, 집단적으로 공격한다는 비판이 담긴 표현입니다.

이 말 뒤에는 실제로 마녀 혐의를 씌워 사람들을 재판하고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역사가 있습니다. 특히 1692년 북아메리카 세일럼에서는 다른 사람이 확인할 수 없는 ‘유령의 공격’까지 재판에 들어왔습니다.

허황되게 들리는 말이 어떻게 사람의 목숨을 결정하는 판단에 쓰였을까요?

목차

마녀사냥은 ‘중세의 미신’으로만 설명할 수 없습니다

뾰족한 모자와 빗자루 때문에 마녀사냥을 먼 중세의 풍경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유럽의 마녀 박해가 거세졌던 시기를 설명할 때 중요한 것은 16~17세기, 근세입니다. 세일럼 재판도 17세기 말에 벌어졌습니다.

또 이름 때문에 여성만 피해를 봤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남성도 고발과 처벌의 대상이 됐습니다. 여성 피해자가 많았다는 사실과 남성 피해자도 있었다는 사실을 함께 봐야 합니다.

당시에는 주술로 이웃에게 해를 끼쳤다는 혐의가 공동체의 소문으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조사와 법정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영국 국립문서보관소의 재판 자료에서도 이웃의 불화와 피해에 대한 주장이 마녀 혐의로 엮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녀사냥은 개인의 공포가 제도의 처벌과 연결된 역사이기도 합니다.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장면만 떠올리면, 법정이 그 의심을 어떻게 다뤘는지 놓치게 됩니다.

1692년 세일럼, 이웃에 대한 의심이 법정으로 들어갔습니다

당시 세일럼은 오늘날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해당하는 영국 식민지 지역이었습니다. 마녀 혐의가 번지자 당국은 1692년 특별법정을 설치했습니다.

브리짓 비숍은 그 법정에서 가장 먼저 재판받고 처형된 사람입니다. 1692년 6월 10일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그해 모두 19명이 교수형으로 목숨을 잃었고, 자일스 코리는 무거운 돌로 압박하는 강제 절차 중 숨졌습니다. 감옥에서도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따라서 세일럼을 ‘마녀들을 불태운 사건’이라고 쓰면 틀립니다. 다른 지역의 마녀 박해와 세일럼의 처형 방식을 뒤섞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 인물이 피고인 쪽을 가리키는 세일럼 재판을 그린 1855년 매터슨의 회화
톰프킨스 해리슨 매터슨, ‘조지 제이컵스의 재판’, 1855. 1692년 세일럼 재판을 후대에 그린 회화입니다. Peabody Essex Museum 소장 / Wikimedia Commons 공개 사본, 퍼블릭 도메인, 무수정.

조지 제이컵스의 재판을 그린 그림에서는 여러 사람이 법정 안의 인물에게 시선을 모으고, 손을 뻗거나 쓰러지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 그림은 사건 당시의 현장 기록이 아니라 1855년에 그린 후대의 회화입니다. 재판의 긴장을 후대가 어떻게 그렸는지 보여주는 자료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림의 극적인 장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 재판에서 어떤 주장이 받아들여졌느냐입니다.

‘당신의 유령이 나를 공격했다’는 주장은 어떻게 반박할까요?

세일럼 특별법정에서는 이른바 유령 증거(spectral evidence)가 받아들여졌습니다. 누군가의 형상을 한 영적 존재에게 공격받았다는 식의 진술입니다. 다른 사람이 함께 관찰할 수 있는 행동이나 물건과는 성격이 달랐습니다.

이를테면 누군가 “당신의 형상이 나타나 나를 괴롭혔다”고 주장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지목된 사람이 그 자리에 없었다고 설명해도, 상대는 육체가 아니라 영적 형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보통의 위치 확인만으로는 주장을 끝내기 어렵습니다.

이 예시는 기록 속 진술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설명입니다. 실제 인물의 대사를 새로 만든 것은 아닙니다.

매사추세츠 기록관은 이런 증거가 피고인이 방어하기 매우 어려운 성격이었다고 설명합니다. 공포를 불러일으킨 주장이 법정에서 효력을 얻으면, 지목된 사람에게는 자신의 결백을 설명할 길이 좁아집니다.

여기에 다른 사람을 지목하는 고발과 자백이 이어지면 혐의는 더 퍼질 수 있습니다. 박해의 원인을 한 가지 미신으로만 압축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두려움뿐 아니라 고발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재판의 구조가 함께 작동했습니다.

재판을 바꾼 것은 ‘무엇을 증거로 볼 것인가’였습니다

1692년 가을 특별법정은 해산됐습니다. 이후 열린 법정에서는 유령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유죄 판결 비율도 크게 낮아졌습니다.

이 변화는 중요합니다. 사람들의 의심을 모두 지운 뒤에야 재판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주장을 판단에 사용하는 기준이 달라지자 결과도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다만 당시 사회가 곧바로 주술에 대한 믿음 자체를 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매사추세츠는 1692년 12월에도 주술 등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유령 증거를 배제했다’는 변화와 ‘주술 혐의를 범죄로 보지 않게 됐다’는 변화는 같은 말이 아닙니다.

훗날 참여자들의 사과와 피해 회복을 위한 조치도 이어졌습니다. 세일럼이 남긴 질문은 “왜 옛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었을까?”에 그치지 않습니다. 어떤 말을 확인된 사실로 받아들이고, 반박할 기회를 얼마나 주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오늘날의 마녀사냥은 ‘비판이 많다’는 뜻과 다릅니다

오늘날 마녀사냥이라는 말은 실제 주술 혐의에서 벗어나, 누군가를 표적으로 삼아 부당하게 몰아세우는 상황을 비판하는 데 쓰입니다. 사전에서도 정치적 반대자 등 특정 대상을 찾아 괴롭히는 비유적 의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출처가 불분명한 글 하나가 여러 게시판에 복사됐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보는 사람은 “여기저기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유된 횟수가 늘어난 것과 독립적인 근거가 늘어난 것은 다릅니다.

하나의 원문에서 여러 복사본이 퍼져도 출처는 하나로 이어지는 구조
같은 글의 반복 공유와 독립적인 근거의 차이를 설명한 개념 삽화.

처음의 글이 사실인지 확인하지 않은 채 비난에 참여하면, 반복이 확신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이는 현대의 가상 사례이며, 세일럼 재판과 인터넷이 똑같은 제도라는 뜻은 아닙니다. 확인하기 어려운 혐의에 집단의 확신이 붙는 구조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구체적인 자료를 검토하고, 당사자의 설명을 듣고, 확인된 행동을 비판하는 일까지 자동으로 마녀사냥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비판받는 사람이 이 표현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의혹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살펴볼 점구분해야 할 것
여러 곳에서 같은 말이 보인다독립된 근거인지, 한 글의 반복인지
해명이 나왔다실제 내용이 검토됐는지, 무조건 변명으로 취급됐는지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확인된 행동에 대한 비판인지, 사람을 정해놓은 공격인지

세일럼의 비극은 오늘날 모든 논란의 결론을 대신 내려주지 않습니다. 대신 무엇을 증거로 삼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많은 사람이 확신한다는 사실과, 그 확신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은 서로 다릅니다. ‘마녀사냥’이라는 말에 지금도 무게가 실리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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