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의 동전은 지갑이나 주머니에 넣으면 됩니다. 그런데 사극에서는 돈을 한 닢씩 꺼내기도 하고, 줄에 꿴 묵직한 꾸러미를 건네기도 하죠. 동전 가운데 뚫린 네모난 구멍이 눈에 들어옵니다.
엽전의 구멍은 동전을 줄에 꿰어 가지고 다니기 편하게 해주는 장치였습니다. 여러 닢을 한데 묶으면 흩어지기 쉬운 작은 동전을 한 덩어리로 다룰 수 있었어요.
그런데 구멍의 쓰임만큼 재미있는 이야기가 이름에도 들어 있습니다. ‘엽전’의 ‘엽’은 나뭇잎을 뜻해요. 동전 한 닢은 둥근데, 왜 나뭇잎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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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전과 상평통보는 같은 말일까요?
사극 속 둥근 동전을 모두 상평통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엽전은 이런 형태의 옛 동전을 아울러 부르는 말이고, 상평통보는 그 가운데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폐입니다. 조선통보도 엽전에 들어갑니다.
상평통보가 전국적으로 유통되는 공식 화폐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전환점은 1678년, 숙종 4년이었습니다. 그전에도 화폐를 발행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돈을 만들었다고 사람들이 곧바로 어디서나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쌀이나 베로도 거래하던 사회에서 금속 동전이 널리 쓰이려면, 물건을 판 사람이 받은 돈을 다른 거래에서도 사용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상평통보의 역사는 동전을 발행하는 일뿐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돈을 받아 쓰게 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구멍은 동전을 한꺼번에 다루게 해줬습니다
작은 동전 수십 닢을 손에 쥐고 옮기는 모습을 떠올려보세요. 손을 놓치면 흩어지고, 담아둔 곳에서 하나씩 꺼내는 것도 번거롭습니다.
가운데 구멍에 줄을 통과시키면 여러 닢을 한데 모을 수 있습니다. 주머니에 낱개로 넣는 것과 달리 돈을 묶음으로 잡고 옮길 수 있는 것이죠. 사극에서 본 돈꾸러미가 가능한 이유입니다.
지금은 지갑이 동전을 모아주고, 당시에는 구멍에 꿴 줄이 여러 닢을 모아주었습니다. 돈을 흩어뜨리지 않고 가지고 다니려는 필요는 지금도 익숙합니다.
다만 구멍이 있다고 휴대 문제가 전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금속 동전은 많이 모을수록 무거워집니다. 줄에 꿰면 다루기 편해져도 동전 자체의 무게가 사라지지는 않아요.
또 상평통보의 크기와 무게는 발행 시기와 종류에 따라 달랐습니다. 따라서 사극에서 본 꾸러미 하나를 모든 시대의 일정한 금액이나 무게로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둥근 바깥과 네모난 안쪽에 담긴 생각
바깥은 둥글고 안쪽은 네모난 형태에는 동아시아에서 오래 이어진 화폐의 모양도 담겨 있습니다. 한국은행의 화폐 해설은 이를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의 관념과 연결해 설명합니다.
구멍은 줄에 꿰는 데 쓰였고, 둥근 바깥과 네모난 안쪽은 하늘과 땅에 빗대어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휴대하기 위한 쓰임과 형태에 담긴 상징은 서로 다른 이야기입니다.
동전에 적힌 네 글자는 어떻게 읽을까요?

상평통보 앞면에는 구멍을 사이에 두고 ‘常平通寶’ 네 글자가 놓여 있습니다. 지금의 가로쓰기처럼 왼쪽부터 차례로 읽는 방식이 아닙니다.
| 위치 | 글자 | 읽는 순서 |
|---|---|---|
| 위 | 常, 상 | 첫 번째 |
| 아래 | 平, 평 | 두 번째 |
| 오른쪽 | 通, 통 | 세 번째 |
| 왼쪽 | 寶, 보 | 네 번째 |
즉 위 → 아래 → 오른쪽 → 왼쪽으로 ‘상평통보’를 읽습니다. 사진의 앞면과 위 표를 함께 보면 네 글자가 놓인 자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뒷면에도 살펴볼 부분이 있습니다. 상평통보는 여러 관청과 지역에서 만들어졌고, 뒤쪽에는 주조 기관을 나타내는 글자 등 여러 표식이 새겨졌습니다. 예를 들어 ‘戶’는 호조를 나타내는 표식입니다.
앞면이 같은 상평통보라고 해서 뒷면까지 모두 똑같지는 않습니다. 앞면에서는 화폐 이름을, 뒷면에서는 어디서 만든 돈인지 알려주는 단서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동전을 뒤집어보는 것만으로도 관심이 모양에서 제작 배경으로 넓어집니다.
둥근 동전인데 왜 ‘나뭇잎 돈’일까요?
답은 동전 한 닢보다 동전을 만드는 과정에 있습니다.
옛 동전은 금속을 녹여 형틀에 부어 만드는 주조 방식으로 제작했습니다. 형틀에는 여러 동전 자리와 그 자리로 쇳물이 흘러가는 길이 연결돼 있었어요. 한 번에 여러 닢을 만들기 위한 구조였습니다.
쇳물이 굳은 뒤에는 동전들이 가느다란 금속 부분을 통해 연결된 모습이 됩니다. 동전을 하나씩 떼어내기 전에는 마치 가지에 잎이 달린 것처럼 보입니다.
‘엽전’은 완성된 동전이 잎처럼 생겼다는 말이 아니라, 가지에 달린 잎처럼 이어진 제작 모습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동전을 줄에 꿴 모습과 주조 직후의 모습은 구분해야 합니다. 돈꾸러미에서는 줄이 가운데 구멍을 통과하지만, 제작 중에는 동전 가장자리가 금속 가지와 이어져 있습니다.
이후 동전을 떼어내고 가장자리를 다듬으면 우리가 아는 한 닢이 됩니다. 구멍은 돈을 사용하는 모습으로, ‘엽전’이라는 이름은 돈을 만드는 모습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오늘의 동전과 비교하면 더 잘 보입니다
엽전과 오늘의 동전은 모두 작고 둥근 금속 돈이지만, 만드는 방식과 가지고 다니는 모습은 달라졌습니다.
| 비교할 부분 | 엽전 | 오늘의 동전 |
|---|---|---|
| 가운데 구멍 | 줄에 꿰어 묶을 수 있음 | 우리나라의 일반 유통 동전에는 없음 |
| 대표적인 제조 방식 | 녹인 금속을 형틀에 붓는 주조 | 금속 소재에 무늬를 눌러 새기는 압인 |
| 여러 닢을 가지고 다니는 모습 | 구멍을 이용해 줄에 꿰기도 함 | 지갑·주머니 등에 낱개로 담음 |
한국은행은 조선 말기 주화 제조 방식이 주조에서 압인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가운데 사각 구멍도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고 설명합니다. 어느 날 모든 엽전이 한꺼번에 새 동전으로 바뀐 것은 아니며, 옛 화폐와 근대 화폐가 함께 쓰이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엽전의 구멍을 보면 사극 속 돈꾸러미가 이해되고, 제작 모습을 보면 ‘나뭇잎 돈’이라는 이름이 이해됩니다. 다음에 박물관에서 상평통보를 만나면 가운데 구멍만 보지 말고 앞뒤 글자와 가장자리도 함께 살펴보세요. 작은 한 닢 안에 돈을 만들고, 옮기고, 믿고 사용하던 방식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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